MLB를 점령한 LA 다저스 특급 몬스터 "류현진(Hyun-Jin Ryu) 투수"

Posted by 건축시공기술사 사&슬 파파
2019. 3. 27. 07:59 야구 이야기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특급 몬스터 투수입니다. 그는 2006년 혜성같이 나타나 KBO를 평정하며 한국 야구 역대 최고의 좌완투수일 뿐만 아니라 동시대 활동하는 한국 투수 중 단연 No.1이라는 칭호와 함께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2012 시즌 후 한국프로야구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유일한 대한민국 선수입니다. 메이저리그 진출 한국 투수 최초 데뷔 첫 해 완봉승을 거두었으며, 지금까지 82경기 475⅓이닝을 소화하며 33승 25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마 어마한 실력의 소유자. MLB를 점령한 LA 다저스 특급 몬스터의 이름은 류현진 투수입니다.

 

◆ 대한민국 괴물 투수의 프로필 

▶ 이

     름 : 

류 현 진  

▶ 출     생 : 1987년 3월 25일

▶ 신     체 : 190cm, 115kg, A형

▶ 학     교 : 인천창영초 - 동산중 - 동산고 - 대전대

▶ 소 속 팀 : 한화(06~12), 다저스(13~현재 )

▶ 포 지 션 : 투수

 

▶ 

데     뷔 : 

2006년 2차지명 1라운드 전체 2번(한화)

 

▶ 등 번 호 : NO. 99

 

 

 그는 자질을 일찍 인정받아 동산고 1학년 때부터 팀의 에이스 역할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열린 미추홀기에서 준결승전까지 4경기에 연속출전하여 모두 승리를 거두며 팀을 결승에 올려놓았습니다. 이후 결승전에서는 4연속 등판으로 완전히 지쳐버렸던 터라 휴식을 위해 등판하지 않았고, 이때 동산고 감독은 류현진 대신 금민철을 선발로 등판시켰지만 금민철은 결승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결국 류현진이 완전히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다시 등판하게 되지만, 류현진도 피로 여파로 인해 결국 팀은 준우승에 그치게 되었습니다.

 

 

  이 대회 이 후 그는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팔꿈치 부상에 따른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아야 했고, 3학년이 되어서야 다시 공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3학년이 된 그는 청룡기 대회에서 또 다시 예선부터 준결승전까지 3경기를 내리 던지면서 전부 무실점으로 승리를 이끌었습니. 특히 8강전때 성남고와의 경기에서 무려 17개의 탈삼진을 잡아내어 스카우터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무리로 인해 결승전에서는 1회만에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되었고, 결국 최우수 선수상도 팀의 역전에 큰 공헌을 한 현천웅에게 내어주게 되었습니다.

 

 

◆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다

 소속 학교와 국가대표팀에서 맹활약했던 그였지만 고향 팀 SK에서는 인천고등학교 포수 이재원을 1차 지명하였습니다. 주전 포수 박경완의 후계자가 필요했던 점도 대형 포수 유망주였던 이재원을 선택한 요인이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도 그를 거르고 2차 1순위로 광주제일고의 사이드암 투수 나승현을 지명하자, 결국 턴이 넘어온 한화 이글스가 2차 1순위로 류현진을 지명하여 계약금 2억 5천만 원의 조건으로 입단하였습니다. 한화 이글스의 코치진은 그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전지훈련 때부터 선발 자원으로 낙점하였습니다. 당시 한화 이글스는 선발 자원은 상당히 풍족한 편이었기에 그의 선발 낙점은 파격적인 기용이었습니다.

 

 

KBO 역대 최초로 신인왕과 MVP 동시 석권하다

 그의 등번호는 99번. 처음 입단했을 때 구대성의 15번이 배정되었으나, 원 주인인 구대성이 시즌 중 한화에 돌아오면서 99번으로 변경했습니다. 처음에는 남는 번호 중에 하나 아무거나 고른 거였으나, 이후 한화의 1999년 우승을 재현한다는 의미와 함께 이글스의 레전드 투수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 한용덕의 등번호[19](21+23+15+40)의 합이라는 어마어마한 의미를 담게 되었습니다.

 

 

 그는 드래프트 당시엔 주목받지 못했지만, 정규시즌에서 그동안 쌓아뒀던 잠재력을 순식간에 터뜨리며 압도적인 기량으로 한화는 물론 대한민국의 차세대 에이스로 급부상하였습니다. 압도적인 구위를 선보였으며, 직구 부분에서는 제구, 구위, 구속을 모두 최고로 평가받았습니다. 게다가 신인왕과 MVP를 동시 석권한 대한민국의 첫 야구선수로 등극. 직구, 커브, 슬라이더 등으로 리그를 정복하였습니다. 그는 만 25세 시즌이자 데뷔 후 7번째 시즌인 2012년까지 7년 동안 총 98승을 올렸습니다. 2012 시즌을 부상 없이 보낸다면 팀 선배였던 정민철이 갖고 있는 최연소 100승 기록(만 27세 3개월 2일)을 무난하게 경신할 것으로 보였지만 2012년에는 지독한 불운과 암울한 팀 사정까지 맞물려 9승에 머물렀고, 기록 경신은 물론 7년 연속 10승 달성도 실패했습니다.

 

 

 다음 시즌인 2013년에도 만 26세이니 국내에 잔류했다면 무난하게 달성할 수 있었겠지만 이 또한 메이저리그 진출로 무산. 거기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받은 병역 특례도 있으므로 선수 생활 동안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려먹을 큰 부상만 입지 않는다면 송진우가 보유하고 있는 통산 최다승(210승)에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었고, 류현진 말고는 이 기록에 도전해 볼 만한 선수조차 없었지만 이 역시 메이저리그 진출로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 KBO에서 혹사를 당하다

 2006 시즌 팔의 통증이 찾아와 로테이션을 쉬고자 했는데, 그런 그를 김인식 감독이 구대성의 부재를 이유로 마무리로 돌려 버리는 등 그야말로 관리라는 것을 전혀 받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나마 2008년에 들어서야 5인 로테이션을 철저하게 지켜주는 등 관리를 해주었으나, 그간 2년간의 혹사는 갓 프로에 입단한 고졸 신인에게 너무 가혹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는 데뷔해인 2006년에는 201⅔이닝, 2007년에는 211이닝, 그나마 관리를 해준 지난해에는 165이닝을 던졌지만 2009시즌에 다시 190이닝 가까이 공을 던졌습니다. 누적이닝이 767이닝으로 고졸 신인으로서는 단연 최다 이닝을 소화했는데, 그는 2000년대 이후 4년 연속 160이닝을 기록한 세 투수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이닝당 투구수가 많은 편이라 경기당 평균 투구수가 2006년엔 105구, 2007년에는 111구, 2008년에는 103.3구, 2009년에는 109구를 기록하였습니다. 웬만한 선발투수가 등판하면 90-100구 정도를 던진다고 보았을 때 투구수가 상당히 많은 편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정규 시즌에도 혹사를 당하였지만 국제 대회에서도 많은 혹사를 당했습니다. 국제 대회 이닝 1위가 바로 류현진 선수입니다. 거기다가 약한 팀 상대로 쌓은 이닝이 아니고, 강팀만 만나서 쌓은 이닝이라는 점에서 그의 투구수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LG, 롯데, 기아 킬러 본능을 발휘하다

 그는 LG, 롯데, 기아 킬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성적을 살펴보면 KIA에게는 2006~2008년까지는 그야말로 그는 사신(死神)이었습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동안 9경기에 등판해서 8승 무패 ERA 1.46를 기록하였습니다. 이후 암흑기보다 공격력이 강화된 기아에게 2009~2012년에는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꾸준히 강한 모습을 보였던 것은 좌완타자가 많은 LG뿐이었습니다. 4년 동안 25경기(5-7-5-8)를 치뤘고 18승/189개의 삼진을 거두었습니다. 거기에 정규이닝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갈아치울때 상대한 팀도 바로 LG, 한 경기 최다 탈삼진(17K)을 달성했을 때 상대팀 역시 LG였습니다. 롯데에게는 2006, 2007, 2010년에만 강했고 나머지는 약했습니다. 06, 07년에는 이대호 혼자 타선을 이끄는 상황이라서 그에게 약했지만, 조성환, 홍성흔 등 리그를 대표하는 우타자들이 영입 및 복귀하였고, 거기다 강민호. 황재균, 전준우 등 역시 10홈런 이상 칠 수 있는 장타력을 가진 우타자들이 성장하면서 그가 상대하기 힘들어졌습니다.

 

 

◆ 류현진 선수의 수상 기록(KBO)

☞ 2006년 한국프로야구 MVP

☞ 2006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

☞ 2006, 2010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 2007년 한국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MVP

☞ 2006년 한국프로야구 다승왕

☞ 2006, 2010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평균자책점

☞ 2006, 2007, 2009, 2010, 2012년 한국프로야구 탈삼진왕

 

 

◆ 류현진 선수의 보유 기록(KBO)

☞ 정규이닝 최다 탈삼진 17개

☞ 최다 연속 QS(비공인) 29경기

☞ 한화 이글스 임시결번 No. 99

 

◆ 대한민국 최초로 MLB에 직행하다

 한화는 새로운 감독으로 김응룡 감독을 영입했습니다. 김응룡 감독 부임 이후 팀 상황 등을 들어 그를 해외로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면서 메이저리그 진출이 힘들어질 것으로 보였으나 그는 강한 의지를 보였고, 구단과 코치진도 그의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리면서 포스팅 추진을 결정하였습니다.

 

 

 그의 포스팅을 추진한 결과 그는 다저스와 6년 3600만달러 계약에 성공하였습니다. 이로써 KBO 최초 메이저리그 직행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계약 조건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동안 총 750이닝 이상을 소화할 경우, 그 다음 해에 옵트아웃을 선언할 수 있다. 또한 매년 이닝 소화에 따른 최대 백만 달러의 인센티브가 걸려있고, 사이영상 투표 순위에 따라 연봉이 상승된다. 다저스는 통역비용을 부담하고 양측의 서면합의 없이 그를 마이너리그로 내릴 수 없다” 등 이었습니다.

 

 그는 메이저 리그 데뷔 첫해. 시즌 전 온갖 우려를 불식시키며 훌륭하게 메이저리그에 안착했습니다. 보통 때였다면 신인왕도 노려볼 수 있을 만큼 모두의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준 한 해였습니다. 데뷔 2년차를 맞이하는 시즌. 작년 성적과 비교했을때 조금 아쉽지만 어쨌든 2년차 징크스는 무사히 넘겼습니다. 하지만 3년차에 그는 어깨 부상으로 정규시즌 등판을 한번도 하지 못한 채 시즌아웃되고 말았고 그 다음해에도 이렇다할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하반기에 시즌 아웃 당했습니다.

 

 

 2017년 시즌을 맞이한 그는 스프링캠프에서의 호투로 2년만에 정상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오며 기대치를 높였습니다. 중간에 부진을 겪었지만 후반기 들어 7,8월 1점대 방어율로 매우 준수한 성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시즌 막판 무너지는 경기가 많았고, 결국 기대와는 달리 결국 예상대로 내셔널 리그 포스트시즌과 챔피언십시리즈 엔트리, 그리고 1988년 이후 29년 만에 올라온 월드 시리즈 엔트리에서도 모두 제외되었습니다.

 

 

 

◆ 류현진 선수의 이모 저모

☞ 오른손잡이이다. 하지만 아버지인 류재천 씨가 사왔던 야구 글러브가 왼손잡이용이고, 왼손으로 야구를 하는 거라 생각했던 그는 왼손으로 공을 던지면서 좌완이 되었고 또 양손잡이가 되었음.

☞ 별명은 류뚱, 괴물, 류한제{이사 만루에서 쓰는 가명),류형신{컴투스 프로야구에서쓰는 가명), 뚱떨천사(뚱뚱해서 떨어진 천사), 그리고 류딸, 륶딸, 류xx, C급좌완, 류도망 등이 있음.

☞ 2012년 시즌 종료 후 그가 메이저리그로 가며 팀에 남긴 200억이 넘는 돈을 한화 내부 FA 잔류 및 외부 FA 거물 영입에 유용하게 쓴 것이 공양미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그의 이름과 심청이를 합친 현청이라는 별명이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나오기도 했음.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 첫 해에는 소속 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홈구장 다저 스타디움에서 유독 호투를 펼쳐 같은 팀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의 이름을 따 '홈 커쇼'라는 별명을 새로 얻었음.

 

☞ 은사이자 감독이던 김인식과도 같이 라면 광고를 찍었음

 

 

☞ 류현진이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타자라고 밝힌 선수는 최정 선수임. 실제로 류현진 상대 최정의 기록은 타율 3할6푼2리(58타수 21안타) 홈런 4개임.

☞ 메이저리그에서의 대표적인 천적으로는 MLB 최고의 3루수라고 평가받는 놀란 아레나도가 있음. 맞대결에서 무려 9타수 8안타 3홈런으로 말이 필요없는 류현진 야구인생에 있어 최악의 천적관계임.

☞ 팀 내 동료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성격과 친화력이 매우 좋음.

어렸을때 현대 유니콘스 어린이 회원이었음.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귀여운 척을 많이 함.

2010년 프로야구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에 참여해 홈런 1개를 때렸음.

좌완 투수로는 특이하게 좌타자보다 우타자에게 강하다. 피안타율이 대략 좌타자 상대시보다 우타자 상대시 5푼 정도 낮음.

☞ 2017년 9월 13일 아나운서 배지현과 열애 중이라는 기사가 떴고, 열애설을 양측 모두 인정했고, 결혼에 골인하였음. 참고로 둘이 만나게 된데에는 팀 선배였던 정민철 의 역할이 컸다고 함.

 

 

2014년 4월 16일 일어난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구조 지원을 위해 1억원을 기부했음.

2013년 우리나라를 빛낸 최고의 스포츠 선수 1위에 올랐었음.

☞ 대전대 사회체육학과 2008년에 입학해서 2012년 2월 졸업했음.

☞ 대전 KGC인삼공사에서 뛰고 있는 배구선수 백목화와 사귄다는 소문이 한때 있었으나, 확인 결과 백목화가 그의 열렬한 팬인 것으로 알려졌음.

 

☞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장애인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는 류현진 선수를 포함해 지금까지 김연아(피겨스케이트) 전 선수와 이민호(배우) 등 14명의 홍보대사를 위촉했음. 야구선수로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에 이어 류현진 선수 2명임.

 

 

☞ 동산고 시절 4번 타자였고 타격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음.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때 홈런을 친 적도 있음. 심지어 지명타자제도가 없는 내셔널 리그에서 13년도 타격 성적은 황재균의 17년도 타격 성적보다도 높음.

☞ 한국프로야구에서 단 7시즌만 뛰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2013년 이후에는 기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21세기(2001~2017) 투수 WAR 1위를 몇 년째 굳건하게 지키고 있음. 2위인 윤성환의 WAR와 무려 6 이상 차이나는 압도적인 기록이다. 동 세대라고 볼 수 있는 김광현, 윤석민, 양현종은 물론이고, 선배 투수인 손민한, 배영수, 윤성환, 봉중근, 장원삼, 장원준처럼 류현진의 두 배 가까운 재적 기간을 가진 투수도 류현진의 WAR을 뛰어넘지 못했음.

☞ 국내 프로야구에서 사인을 안해주는걸로 유명하다는 말이 있음.

☞ 스프링 캠프 기간동안 찾아온 팬들에게 사인도 열심히 해주는 등, 하지만 이것은 애초에 MLB는 싸인을 거부하면 구단 내에서도 징계를 먹이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임.

그가 사는 LA 아파트에는 NBA 농구스타이자 LA 레이커스의 간판인 코비 브라이언트도 산다고 함.

☞ LA 다저스에서 다 친하긴 해도 가장 많이 얽히는 동료는 역시 후안 유리베와 야시엘 푸이그임.

 

 

◆ 코리아 특급 류현진 선수에게 바란다

  그는 다시 한번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습니다. 현재 몸 상태를 본 다면 많은 기대를 걸어도 좋을 거 같습니다. 연일 그는 시범 경기에서 호투를 펼치고 있고 미디어 매체에서도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는 명실 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특급 투수입니다. 올 시즌 그는 LA 다저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즌입니다. 어떤 활약을 펼치는가에 따라 FA 대성공과 KBO 복귀라는 갈림길에 서있습니다. 부디 올해는 코리아 괴물 투수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LA 다저스가 우승할 수 있게 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시즌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류현진 선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