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 농구를 통째로 집어 삼키고 기아 왕국을 건설한 “농구 대통령 허재 선수”

Posted by 건축시공기술사 사&슬 파파
2024. 3. 14. 08:53 농구 이야기/한국 농구 KBL

실업 농구에 등장과 함께 집어 삼키다

 

 

 우승 제조기 허재 선수가 대학 졸업 시기가 되자 실업팀들은 계약금으로 몇 억씩을 불러대며 그를 자신들의 팀으로 스카우트하려 엄청난 경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봉섭 감독의 영향 하에 대학 선배인 김유택과 한기범이 있던 기아자동차에 입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기아는 이미 연세대와 중앙대의 특급 선수들을 스카우트해 유재학, 정덕화, 한기범, 김유택이란 막강한 선수들을 데리고 있었는데 여기에 그가 합류하면서 화룡점정을 찍었습니다. 

 입단 첫 해 88-89 시즌에선 유재학과 처음 파트너를 이뤄 환상적인 패스웍과 공격적인 플레이를 보여주며 첫 우승을 일궈냈고, 강력한 견제를 받기 시작한 89-90 시즌에선 득점왕을 차지하며 2연패를 엮어냈습니다. 1989년, 1990년, 1991년 기아자동차와 그의 무적시대는 계속되었습니다. 1990년에 굴지의 가드 유재학이 은퇴로 팀을 떠났으나 강동희가 빈 자리를 더욱 잘 메우면서 이른바 허동택 트리오를 결성, 기아는 더욱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 위기 속에서 다시 한번 에이스임을 보여주다

  최전성기였던 그에게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팀 내에서 연세대 출신과 중앙대 출신 간에 갈등이 생겨나면서 기아는 제대로 된 선수 수급을 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기아자동차의 창단 멤버들이 은퇴해 나가자 전력 보충이 안 되어 그를 비롯한 베스트 멤버 이외엔 믿을 만한 선수가 없어졌고, 결국 주전 멤버들에게 지나친 체력 부담이 가해졌습니다.

 그 상황에서 김유택이나 한기범은 부상 속에 1990년을 기점으로 크게 내리막길을 걸어갔고, 그 역시 1991년 무렵 무릎 부상을 당하며 운동능력을 어느 정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거기다 전체적으로 선수 관리가 부실하던 실업 농구 시대만 해도 한국 나이로 30살은 은퇴의 갈림길로 인식되었고, 그는 그 때 기준으로 슬슬 노장 축에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런 문제점들은 1993년 농구대잔치 시기에 폭발, 허재와 기아자동차는 팀 동료이던 강정수가 감독을 맡은 학교 후배 중앙대 농구부에게 농구대잔치 플레이오프에서 패하는 굴욕을 겪고 말았습니다.

 위기 상황이 오자 그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결혼을 통해 정신적인 안정을 얻은 것도 그가 자신의 농구를 추스르는 데 한 몫을 했습니다. 결국 그는 1994년 농구대잔치에서 당시 엄청난 선수로 주전 라인을 꾸린 고려대를 꺾고 농구대잔치 결승에 진출, 연세대를 힘겹게 누르고 결승에 올라와 최후의 불꽃을 태우고 있는 김현준 선수가 이끄는 삼성을 상대하게 되었습니다. 김유택, 강동희가 돌아가며 삼성을 두들긴 후 그의 좌중을 압도하는 개인기로 3분간 홀로 17득점을 올리며 결승을 마무리하며 그는 여전히 최고라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1995년 농구대잔치는 드디어 기아의 시대가 끝나는가라고 농구팬들이 생각했던 시즌이었습니다. 고려대는 신기성, 김병철, 양희승, 현주엽, 전희철이라는 올스타 라인업을 만들어 농구대잔치 정규시즌에서 전승을 거두었고, 상무는 이상민을 필두로 대거 입대한 스타 선수들로 역대 최고 수준의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김영만이 새로이 합류했지만 기아자동차의 멤버들은 부상과 체력저하에 시달리며 몇 번이나 패배를 겪으며 겨우 겨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플레이오프에서 기아가 살아남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그랬든 위기가 오자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렸습니다. 김유택의 주도로 팀 전원이 머리를 짧게 깎으며 정신을 다잡은 상황에서 그는 플레이오프 8강에서 SBS를 상대로 50점을 몰아넣으며 자신의 위력을 재차 보여주기 시작, 4강에선 정규시즌 전승을 거둔 고려대를 격파, 결승에선 이상민이 이끄는 상무까지 격파하며 다시 한번 농구대잔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1996년 그는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상태에서 또 다시 무면허 음주 운전을 저질러 체포 후 포승줄에 묶이는 상황을 겪었습니다. 이 일로 선수자격을 정지당하므로 해서 KBL 출범 전 자신이 최후로 출전할 수 있었던 농구대잔치에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국가대표 자격을 영구 박탈 당했지만 그의 대표팀 복귀를 갈망하는 팬들의 열망 덕분에 그는 다시 대표팀에 복귀할수 있었고, 그는 실력으로서 그들의 성원과 기대에 보답하였습니다.

 

 

◆ 역대 농구대잔치 우승과 준우승팀

  83~84 우승팀: 현대전자/준우승팀: 삼성전자

  84~85 우승팀: 삼성전자/준우승팀: 현대전자

  85~86 우승팀: 현대전자/준우승팀: 중앙대

  86~87 우승팀: 현대전자/준우승팀: 중앙대

  87~88 우승팀: 삼성전자/준우승팀: 기아산업

★ 허재 기아 산업 입단

  88~89 우승팀: 기아산업/준우승팀: 현대전자

  89~90 우승팀: 기아산업/준우승팀: 현대전자

  90~91 우승팀: 기아/준우승팀: 현대전자

  91~92 우승팀: 기아/준우승팀: 삼성전자

  92~93 우승팀: 기아/준우승팀: 삼성전자

  93~94 우승팀: 연세대학교/준우승팀: 상무

  94~95 우승팀: 기아자동차/준우승팀: 삼성전자

  95~96 우승팀: 기아자동차/준우승팀: 상무

  96~97 우승팀: 연세대학교/준우승팀: 상무(허재 불참)

 

◆ 역대 한국농구 선수 중 최고의 테크니션 허재의 장점.

1) 환상적인 드리블 능력

☞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되는 분야임.

☞ 그의 드리블은 상황과 목적에 맞도록 변화함.

☞ 리딩 가드로서 볼 키핑이나 운반 능력이 요구될 때는 철저하게 불규칙한 드리블을 치면서 절대로 타이밍을 읽히지 않는 플레이를 구사함.

☞ 높이, 방향, 속도에 변화를 주는 이런 불규칙 바운드를 구사할 줄 아는 선수는 현역에선 그 말고 몇 명 없을 정도임.

☞ 포스트업 시에는 놀랄만큼 빠르고 힘있는 드리블을 구사하며 중심 이동을 가져가서 득점을 마무리 함.

☞ 페네트레이션 시에는 몸의 중심에서 최대한 멀리 볼을 떼어 놓은 채 땅바닥에 붙어 있는 듯한 낮은 드리블을 유지하면서 돌파를 함.

☞ 기본기에 충실한 드리블부터 페이크 동작을 섞은 화려한 드리블, 비하인드 백 드리블이나 유로스텝, 스핀 무브에 크로스오버까지 온갖 드리블 기술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능력의 소유자.

☞ 드리블과 스피드를 살려 볼을 잡자마자 순간 단독 속공 능력으로 인해 파울이 아니면 막기 힘든 실력의 소유자.

2) 믿을수 없는 어시스트

☞ 농구대잔치 통산 어시스트 1위의 기록(782개)을 보유하고 있음.

☞ 득점 상황을 창조해내는 ‘메이킹 어시스트’가 가능함.

☞ 누구도 보지 못하는 패스길을 찾아내고 어시스트로 연결할 수 있는 능력.

3) 상황에 맞는 패스능력

☞ 돌파 능력과 연계해 수비수를 모은 후 밖으로 빼주는 패스부터 해서, 인사이드로 안정적으로 넣어주는 엔트리 패스, 감각적인 노룩패스, 속공 상황에서 빠르게 앞으로 찔러주는 패스까지 모든 것이 가능한 선수.

☞ 움직이는 상황에 맞게 딱 맞춰서 빈 공간에 빠르게 넣어주는 패스.

4) 예술적인 돌파 능력

☞ 페네트레이션은 단순한 2점으로 보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예술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함을 보여줌.

☞ 왼손잡이임에도 오른손잡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오른손을 잘 썼고, 양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해 좌우 어디로도 돌파한 후 양손을 사용해 어느 방향으로든 레이업이 가능함.

높은 점프 후 체공 시간을 이용한 더블 클러치로 득점 마무리 능력이 뛰어남.

5) 노력으로 일궈낸 중장거리 슛

☞ 고교, 대학까지의 그의 플레이의 최대 약점은 외곽슛이었음.

☞ 엄청난 노력으로 기아산업 입단 직후인 88-89 시즌부터는 놀라운 적중력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3점슛 부분에서 농구대잔치 통산 1위에 올라서는 기염을 만들어냄.(통산 652점).

☞ 스스로 슛 찬스를 만들어 낼 수가 있는 능력이 뛰어남.

☞ 점프를 하면서 그 탄력을 받아 슛을 던지는 보통 선수와는 달리, 높은 점프와 탁월한 스냅을 보유한 그는 점프의 정점에 올라선 때 볼을 릴리스하는 호쾌한 볼거리를 선사했음.

☞ 운동 능력을 살려 위로 확 솟구치는 듯이 쏘는 점프슛부터 턴어라운드 페이더웨이, 풀업 점퍼 등 각종 슛에서도 출중했음.

☞ 공을 가진 상태에서의 공격만이 아니라 공이 없는 상태에서의 움직임도 탁월했고, 항상 호흡을 맞춰 온 강동희와 김유택이 찔러 주는 패스를 받아 백도어 플레이를 해내거나 같은 팀의 스크린을 이용해 빠져나온 후 슛을 넣는 전형적인 슈터 플레이에도 능함.

6) 엄청난 탄력에 이은 리바운드 능력

☞ 농구대잔치에서 전체 3위에 기록 (1411개)을 보유하고 있음.

☞ 특히 이 기록의 대부분은 대학 1년부터 기아산업 초기 3년간에 집중적으로 세워진 것으로 당시 그가 득점은 물론 어시스트와 리바운드에도 능한 올라운드 플레이어로서의 그의 위상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내용임.

☞ 솟구쳐 올라 한 손으로 낚아채듯 건저내는 리바운드 기술, 상대 선수를 등지 고 점프를 뛰는 기술, 순발력을 바탕으로 연속적인 리바운드 다툼에서 이기는 능력이 뛰어남

7) 지치지 않는 체력

☞ 풀타임을 소화하고는 남아도는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

☞ 86년 초 태릉 선수촌에서 실시한 체력 테스트에서 내노라 하는 투기 종목이나 장거리 육상 선수를 제치고 그가 전체 2위를 차지했던 일은 당시 체육계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사건.

8) 패스의 맥을 끊는 탁월한 스틸 능력

☞ 일대일 수비와 상대 패스의 맥을 읽고 중간에 끊어내는 스틸에도 능했고, 특히 스틸은 역대 최고 수준을 보여주었음.

9) 포스트업 가능한 슈팅 가드

☞ 역대 가드 포지션의 선수들 중 최고의 포스트업 능력을 가지고 있음.

☞ 포스트업 기술이 웬만한 센터보다도 나을 정도임.

10)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파워와 유연성

☞ 화려한 고난도의 테크닉, 정교한 슛에 의한 농구뿐 아니라 힘을 앞세운 저돌적인 농구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파워와 유연성을 가지고 있음.

 

◆ 대한민국 레전드들이 바라본 허재 선수

 이충희가 본 허재 "허재가 농구는 정말 잘했다. 남들이 할 수 없는 힘의 농구를 했었다. 허재가 들어오기 전에는 선수들이 잔기술을 이용한 기술 농구를 많이 했었다. 하지만 허재는 기술적인 면도 뛰어났지만, NBA나 유럽농구처럼 힘이 있는 농구를 했기 때문에 굉장히 두드러졌다. 나보다 뛰어난 기량의 선수였고, 어느 자리에서나 잘할 수 있는 올-어라운드 플레이어였다"

 강동희가 본 허재 "허재 형은 외성적이고 직설적인 성격으로 싫고 좋음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성격이다. 이러한 성격이 농구코트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농구의 모든 기술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준 선수다. 전무후무할 정도의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최고의 선수다. 또한 승부욕이나 코트에 서면 지기 싫어하는(누구를 막론하고) 성격은 허재 형을 최고의 선수로 만들었다. 농구기술적인 면에서 거의 아시아 선수로 봤을 때 최고의 기량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 베스트 오브 베스트 허재 선수

운동능력만 치면 허재 이상의 선수들이 있었고, 키만 치면 그의 키를 가진 선수가 여럿 있는데, 키와 운동능력과 힘의 조화로는 그가 성인 농구계에 등장한지 20년이 넘었음에도 이후 허재급이라 할 만한 선수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거기다 위기에 몰릴수록 강해지는 정신력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렀던 선수입니다. 권투선수 생활을 한 아버지에게 어릴 적부터 마치 헝그리 복서같은 정신력과 독기가 길러졌고, 이것이 그가 어려운 상황에 몰릴 때마다 헤쳐 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던거 같습니다.

 한편 90년대 초의 나태함 이전에는 그는 연습벌레로도 유명했습니다. 양손 드리블을 제대로 하겠다고 한쪽 손을 묶어놓고 연습을 하는 기행에 가까운 연습도 했고, 스스로 머리를 삭발하고 연습만 하기도 했습니다. 각종 기술들도 누가 가르쳐 준 게 아니라 NBA 쪽 비디오 등을 참고하며 자신만의 연습으로 만들어 나갔고, 그 외 여러 기술들도 누군가의 가르침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이 만들어내 익혀나갔습니다. 그야말로 천재란 별명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신체적 조건이 좋은 선수는 앞으로 얼마든지 나오겠지만 과연 허재만큼 체력이 좋은 선수가 배출될 수 있을지는, 테크닉적인 면에서 그의 후계자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인지 정말 많이 궁금합니다. 그만큼 허재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대한민국 농구계의 최고 중의 최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