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처럼 빠른 속도로 돌파하는 THE Flash "드웨인 웨이드(Dwyane Tyrone Wade)"

Posted by 건축시공기술사 사&슬 파파
2017. 11. 23. 15:33 농구 이야기/미국 농구 NBA

 드웨인 웨이드(Dwyane Tyrone Wade)누가 뭐라해도 마이애미 히트의 프랜차이즈 스타입니다. 샤킬오닐이 지어진 플래쉬라는 별명에 걸맞게 누구보다 더 빠르게 수비 사이를 파고들어 돌파해 내고, 강력한 신체를 이용하여 수비의 저지를 이겨내고 하이이라트 필름을 양산하듯 멋진 득점을 성공시킬 줄 아는 NBA 최고 슈퍼스타입니다.  그는 어느 선수보다 빠르게 상대팀 코트로 달려서 상대 파울을 유도하거나, 정확한 점프슛과 기술적이고 화려한 덩크를 꽂아 넣어 상대방의 의지를 꺽을 수 있는 득점을 만들어 낼수 있는 선수입니다. 근력 훈련을 통해 스피드를 제외한 다른 부분의 바디 밸런스와 상체의 힘을 키워 몸싸움에도 밀리지 않으며 스피드가 더해진 유로스텝과 최고의 드리블 기술을 통해 득점 능력을 향상시켰습니다.


 


 또한 스크린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상대 진영으로 침투해 상대 수비를 농락하며 가볍게 점프슛을 성공시킬 줄 아는 선수입니다. 그는 공격에서만 두각을 나타낸것이 아니였습니다. 수비에서도 상대 최고의 공격수의 공격을 저지할수 있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수비수였습니다. 득점 기계 앨런 아이버슨보다 그를 더 높게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수비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남들 보다 뛰어난 순발력과 긴 팔, 민첩성을 이용해 상대 공격의 맥을 끊는 스틸이나 블록슛에도 능했습니다. 슈팅 가드 포지션 최고의 블라커이기도 했고, 벌크업 된 상체로 페인트 존에서 빅맥들과 밀리지 않으며 골밋슛과 높은 블락 성공률로 인해 동부의 센터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휼륭한 장점을 가진 그도 단점이 있으니 바로 3점슛(30%이하) 성공률과 잦은 부상이었습니다. 


 ◆ 드웨인 웨이드의 프로필

 출     생 : 1982년 01월 17일 , 미국

 신     체 : 201cm , 99.8kg

 학     력 : 마케트대학교

 소     속 :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포 지 션 : 슈팅 가드 / 스몰 포워드

 데     뷔 : 03년 마이애미 1라운드 5순위

 등 번 호 : NO. 3


◆ NBA 입성, 도전, 첫 우승, 영광의 MVP 수상하다 

  그대학 3년을 마치고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였습니다. 03년 전체 1라운 5순위로 마이애미 히트 유니폼을 입게 된 그는 당시 뽑힌 가드로는 가장 높은 순위였습니다.(1번 포워드 킹 르브론 제임스, 2번 센터 다르코 밀리시치, 3번 포워드 카멜로 앤서니, 4번 포워드 크리스 보쉬) 그는 포인트 가드로 시즌을 시작해서 나름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보냈지만 그 해 라이벌인 르브론 제임스와 카멜로 앤서니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때 멋진 활약을 통해 언론과 팬들에게 어느 정도 본인의 이름을 각인을 시켰습니다.  



 04-05 시즌 마이애는 라마오덤, 캐런 버틀러, 브라이언 그랜트를 보내고, 리그 최고 선수인 공룡센터 샤킬오닐 영입에 성공을 했습니다. 그는 샤킬오닐과의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를 선보이며 팀내 최고의 득점원으로 활약하며 팀을 동부 컨버런스 결승에 안착시켰습니다. 하지만 디트로이트 피스턴즈와 7차전까지 가는 혈투끝에 아쉽게 팀은 패배하게 됩니다.



 어느덧 팀 내 주득점이 된 그는 05-06 시즌을 치르는 도중 샤킬 오닐이 부상으로 빠진 상황 속에서도 빠른 스피드를 통한 저돌적인 돌파로 많은 득점을 책임지며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을 시켰습니다. 매 라운드 에이스다운 모습으로 팀을 이끌어 다시 한번 동부 컨버런스 결승에 팀을 올려 디트로이트와 만난 경기에서 보란듯이 복수에 성공하며 팀을 결승에 진출시켰습니다. 결승전 상대는 더크 노비츠키가 버티고 있는 서부 최강팀 댈러스 메버릭스였습니다.  



 그는 결승전에도 맹활약을 하며 팀 공격과 수비를 책임지며 동분 서주하였지만 오닐의 부진으로 인해 1차전 2차전을 내주고 2패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상대팀에서 오닐의 견제가 심해지는 가운데 팀은 작전을 변경. 모든 공을 웨이드에게 몰아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그 공을 받아 폭발적인 득점력을 과시하며, 3차전(42점),4차전(36점), 5차전(43점), 6차전을 승리로 이끌어 역전 우승을 마이애미 히트에 안겨주었고 그는 파이널 MVP로 선정되었습니다.(파이널에서 2패를 한팀이 역전 우승을 이뤄낸 일은 77-78시즌 포틀랜드 이후에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 대단한 일이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 부상, 암흑기 그리고 두번의 우승하다 

 르브론이나 카멜로 앤서니보다 관심을 덜 받던 그는 그들보다 NBA 우승과 MVP에 먼저 도달하며 야심차게 06-07 시즌시작을 하였지만 오닐의 부상과 핵심 멤버들의 이적, 게리 페이튼의 은퇴 등 많은 문제들과 그의 부상으로 인해 팀 성적은 곧두박질 하였고,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떨어지는 수모를 당하였습니다.



 07-08 시즌 히트는 반등의 조짐 없이 최악의 성적을 내며 암흑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오닐의 이적과 함께 그는 부상의 늪에서 허덕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08-09 시즌에 앞서 웨이드는 부상에서 회복하여 올림픽에 출전하였습니다. 그는 올림픽에 식스맨으로 출전하여 출전시간 대비 엄청난 효율성을 발휘하며 동기인 앤서니와 함께 득점 1위를 기록하며 금메달의 영광을 차지하였습니다.


 


 08-09 시즌에 부상에서 복귀한 그는 본인 외에는 득점과 수비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임에도 게임당 30.2득점, 5리바운드, 7.5어시스트, 2.2스틸, 1.3블락을 기록하며 팀에 모든 부분에 기여를 하며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을 시켰습니다. 1라운드 상대는 애틀란트 호크스. 그는 홀로 분전하였지만 7차전까지 혈투 끝에 패배하며 씁쓸히 시즌을 마무리하였습니다.



 09-10 시즌 히트는 포워드 마이클 비즐리를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영입하였습니다. 비즐리는 운동능력과 슛터치가 좋은 반면 수비력이 낮았지만 전체 2순위였기에 기대했던 것보다 팀에 기여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힘든 상황속에서도 웨이드는 홀로 분전하며 팀을 전체 5위에 올려 놓고 플레이오프 진출시켰습니다. 1라운드 상대는 동부의 강호 보스턴 셀틱스. 셀틱스는 웨이드를 상대로 두명, 세명의 수비수를 붙이며 그를 막기 위해 총력을 다했습니다. 이런 겹 겹의 수비수들을 떨쳐 내고 그는 게임당 33.2득점 5.6리바운드, 6.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 승리를 위해 맹활약 하였지만 다른 주전들의 부진으로 2년 연속 1라운드 탈락하게 되었습니다.  



 10-11 시즌 시작 전에 그 마이애미 히트에 남기로 결정합니다. 히트는 그와 함께 콤비를 이룰 멤버를 트레이드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부저와 아마레 그리고 크리스 보쉬가 그 후보였고, 히트는 크리스 보쉬를 영입하는 성공했습니다. 멤버 보강에 성공한 히트는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그건 바로 2년 연속 리그 MVP에 빛나는 최고 슈퍼스타 중 한명인 르브론 제임스가 히트행을 선택 해왔습니다. (르브론의 이적은 클리블랜드 팬들에게 그의 옷을 전부 태울만큼의 엄청난 배신감을 주었고 언론에서는 엄청난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보스턴 빅3에 맞설수 있는 히트의 빅3 삼각편대가 완성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빅3 삼각편대를 바탕으로 팀에 승리가 당연 시 될것처럼 예상되었지만 상황은 그리 녹녹치 않았습니다. 초반 그와 르브론의 동선이 겹치면서 생각만큼 큰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인 두 명은 영리하게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공존하는 법을 깨달았고, 엄청난 수비력을 앞세워 수비를 강화시켜 후반기 승승장구하여 2위로 시즌을 마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1라운드 필라델피아를 4승 1패로 가볍게 통과. 2라운드에서는 작년 그와 르브론에게 패배를 안겨준 보스턴에게도 4승 1패를 거두면서 통과. 동부 컨퍼런스 결승전에서는 동부 1위팀 데릭로즈가 이끄는 시카고를 상대로 승리하면서 파이널 결승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파이널 결승 상대는 서부 강팀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올라온 댈러스였습니다. 예상은 압도적인 실력으로 빅3 삼각편대가 있는 히트의 우세가 점쳐졌지만 예상과 달리 플레오프에서 맹활약하던 르브론이 부진한 모습을 연일 보여주었습니다. 르브론과 보쉬의 부진에도 그는 큰 경기에 강한 모습을 보이며 시종 일관 맹활약을 하였지만 빠른 가드들과 골밑의 강점 등 고른 실력을 가진 댈러스를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시즌이 끝나고 마이애미 히트는 결승전 패배와 함께 올스타급 빅3를 가지고도 우승하지 못했다는 엄청난 비난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11-12시즌  초반 시작과 함께 삼각편대는 연일 맹활약을 펼치며 팀 승리에 이끌어나가든 도중 뜻하지 않게 웨이드는 부상을 당하면서 출전과 결장을 반복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없는 상황에서도 팀은 르브론의 활약으로 승리하는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는 부상으로 인해 예전같은 폭발적인 득점을 생산하지 못하였고, 그로 인해 팀의 프렌차이즈자 1인자에서 자연스럽게 2인자로 내려가면서 팀의 보조역활을 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르브론은 강력했던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연일 맹활약하며 차례로 동부 라이벌을 무너뜨리더니 결국 파이널 결승전 듀란트와 웨스트브룩이 버티는 오클라마호시티 전에서도 4승 1패라는 압도적인 힘으로 히트에게 두번째 챔피언을 안겨주었습니다.(그는 부상 때문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 운동신경이 예전같이 않다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12-13 시즌 부상에서 돌아온 그는 작년에 부진이 자신의 신체 능력이 감소해서 그런게 아니라 부상때문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면서 부활의 신호탄을 연일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르브론 제임스, 크리스 보쉬와 함께 정규시즌 최다 승률을 기록하며 1위로 마무리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시즌 막판 또 다시 무릎 부상을 당해 고전을 하더니 결국 플레이오프에서도 예전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힘든 상황에서도 그는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컨퍼런스 파이널 7차전,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파이널 4차전 등 중요 고비마다 예전의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의 3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데 성공하였습니다.


 

◆ 재계약 실패,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다

  13-14 시즌은 부상으로 인해 장기 결장하였지만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는 르브론과 보쉬의 활약으로 파이널에 올라가게 되지만 그의 부상에 의한 경기력 저하가 팀에 결국 악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패배를 안게되었습니다. 파이널 패배 이후 그와 보쉬는 마이애미 잔류 결정. 하지만 르브론 제임스는 고향팀인 클리블랜드로 돌아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빅3는 해체가 되었습니다. 삼각편대 해체 이후 팀은 예전 강력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패배가 늘어나면서 조용하게 시즌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전혀 힘을 내지 못했던 그는 14-15 시즌 후 팀 연봉 협상과정에서 줄다리기 끝에 1년 재계약에 성공. 팀에 잔류하게 되었습니다.  



 15-16 시즌 그가 부활을 예고하며 연일 맹활약하며 팀 승리에 모든 부분에서 기여하기 시작했습니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도 그의 활약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1라운드 샬럿 호네츠와의 경기에서 막판 클러치 타임을 보여주며 팀 승리를 이끌어 2라운데 진출 성공. 2라운드 상대인 토론토 랩터스와 경기에선 엄청난 쇼타임을 보여주며 팀이 상황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7차전까지 가는 혈전을 이끌며 승리를 위해 온 몸을 불살랐지만 결국 팀을 패배의 구렁텅이에서 구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히트의 프렌차이즈 스타였던 그는 히트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향해 시카고 비행기에 탑승을 하였습니다.



 16-17 시즌, 시카고 불스는 시즌 시작 전 많은 변화를 시도하였습니다. 팀의 핵심 멤버 였던 데릭 로즈와 조아킴 모아, 파우 가솔을 각 각 트레이드를 시켰고, 지미 버틀러도 트레이드를 하네 마네 하면서 결국 잔류를 시켰습니다. 그는 버틀러와 함께 팀을 이끌며 초반 고감도 슛 성공률과 효율성 넘치는 플레이를 선보이며 초반 상승세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팀 내부에 균열이 생기면서 팀 성적도 바닥으로 치닺기 시작했습니다. 그 발단의 시작은 신인들이 열심히 뛰지 않는다고 그와 지미 버틀러가 언론에 말하면서 내부에서 슬렁거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이에 맞서 신인들은 두 명(웨이드와 버틀러)은 리더로서의 자격 문제를 논하면서 내분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팀 내부 상황을 봉합하기 위해 그는 신인들과 함께 훈련하는 시간을 마련하며 노력을 했지만 내려간 승률은 오르지 못하고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시즌이 끝난 후 불스는 대대적인 리빌딩을 감안하였고, 팀 내 에이스였던 버틀러의 트레이드를 시작으로 웨이드까지 트레이드를 시키면서 그는 르브론이 이끌고 있는 클리블랜드로 이적을 하게 되었습니다.


 

◆ 무엇이 그를 떠나게 했는가

  자타가 공인하는 슈퍼스타이자 마이애미 히트의 프렌차이즈 스타였습니다. 마이애미 히트에서 시작해서 무려 13년동안이나 한 팀에서 리더이자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이며 팀을 3번이나 챔피언 트로피를 안겨주었습니다. 당연히 마이애미 히트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영구 결번 처리가 될 것을 그 누구도 의심치 않았던 순간 그는 시카고로 이적하게 됩니다. 무엇이 그를 떠나게 했을까? 그는 팀의 에이스이자 팀을 이끌어가는 리더였지만 13년동안 단 한번도 팀 내 최고 연봉을 받았던 적이 없습니다. 그는 팀의 더 많은 우승을 위해 2010년 르브론과 보쉬를 데려오기 위해 스스로 연봉을 내리기까지 할 정도로 팀에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그렇게 팀을 위해 헌신하고 양보하고 노력해서 팀을 위해 3번이나 우승 트로피를 가져다 준 프렌차이즈 스타에게 히트는 터무니없는 금액으로 재계약을 요구했습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그는 그 금액거부를 하였고, 기다렸다는 듯이 타 구단에서는 그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뒤 늦게 정신을 차린 히트는 처음에 그가 제시한 금액을 수용했지만 그는 마음에 상처를 입을 대로 입은 상태였기에 처음 제시한 금액보다 나은 대우를 요구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히트는 재정적인 문제를 핑계삼으며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고 그로인해 팀의 상징적인 존재였던 웨이드는 이적을 선택하였습니다. 히트 입장에서는 전성기가 지난 그에게 이정도 금액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반면, 그는 전성기때도 최고 연봉을 요구하지 않고 팀 상황에 맞게 연봉을 받았는데 팀을 위해 눈물겨운 헌신을 한 자신에게 이 정도 요구도 들어줄 수 없다라고 말하는 팀에 큰 상처를 받았고 결국 떠나게 됩니다.



 현재 그는 클리블랜드에서 르브론과 다시 한 팀에서 뛰고있습니다. 비록 히트에서 보여주었던 저돌적인 돌파와 폭발력있는 득점력은 예전같지 않지만 팀이 위기의 순간에 보여주는 클런치 슛과 견고한 수비로 지금 팀에서 자신이 해야하는 역활을 파악해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도 한 팀의 프렌차이즈 스타였던 웨이드가 히트에서 영광스럽게 은퇴를 했으면 하는 바램이 컸습니다. 돈 때문에 프렌차이즈 스타를 그렇게 보내 버린 히트는 언젠가 크게 후회를 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몇 년을 더 뛰게 될지는 모르겠고 어느팀에서 또 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부상없이 오래 오래 뛰는 모습을 보여주시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