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돌격대장 “4쿼터의 지배자” 초특급 공격형 가드 “아이재아 토마스(Isaiah Thomas)”

Posted by 건축시공기술사 사&슬 파파
2017. 12. 27. 15:19 농구 이야기/미국 농구 N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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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재아 토마스의 이름은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전설, 아이재아(Isiah) 토마스와 발음이 같습니다. 철자(Isaiah)가 다를 뿐입니다. 그의 이름이 ‘아이재아’가 된 것은 NBA 열성팬이었던 아버지 때문입니다. 원래 부친은 LA 레이커스 팬이었습니다. 부친은 1989년 NBA 파이널을 앞두고 친구와 함께 우승팀 내기를 했습니다. 디트로이트 피스톤스가 레이커스를 이기면 아들 이름을 아이재아 토마스라 짓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 해 파이널에서 디트로이트는 3연패를 노리는 레이커스를 꺾고 우승했고, 부친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엉뚱한 사연으로 지어진 이름이지만, 그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의 농구선수가 됐습니다. 미국에서는 주로 이니셜인 IT로 많이 부르고 한국에서는 앞자를 따온 아토 혹은 아톰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 아이재아 토마스의 프로필

 출     생 : 1989년 02월 07일

 신     체 : 175cm , 83kg

 학     력 : 워싱턴 대학교

 전 소 속 : 새크라멘토 킹스(11년~14년)

                   피닉스선즈(14년~15년) 

                   보스턴셀틱스(15년~17년)

 현 소 속 :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17년~현재 )

 포 지 션 : 포인트 가드

 데     뷔 : 11년 2라운드 60순위 새크라멘토   

 등 번 호 : NO. 4


★ ‘175cm’는 그냥 숫자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키 때문에 설움을 많이 겪었지만 고교시절부터 득점력이 뛰어난 선수로 평가되어왔습니다. 코네티컷의 사우스켄트  고등학교와 워싱턴 대학을 거치면서 득점 기술, 볼 핸들링, 패스 등은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동료들을 통솔하는 리더십도 감독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신입생 때 평균 15.5득점을 기록하며 PAC-10 신인상을 탔고, 2~3학년 때는 올-PAC-10 퍼스트팀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의 대학 경력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3학년 때 가진 PAC-10 토너먼트 결승전입니다. 애리조나 대학과 만난 워싱턴 대학은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을 치렀는데 이때 토마스가 위닝샷을 넣으면서 77-75로 극적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슛은 본인 판단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19초 남은 상황에서 감독은 타임아웃을 생각했지만, 그는 자신이 해내겠다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 자신감 그대로 그는 가볍게 상대를 따돌리고 스텝백, 페이더웨이 점프슛을 성공시켰습니다.


 대학 시즌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을 만나 32강에서 끝났습니다. 타일러 젤러(샬럿 호네츠)와 해리슨 반즈(댈러스 매버릭스)를 막지 못해 팀은 패배하였습니다. 그는 이 경기를 끝으로 4학년에 올라가지 않고 NBA 프로에 가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그러나 드래프트를 앞둔 시점에서 NBA 드래프트 닷넷이 내놓은 그의 ‘단점’을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너무 작다. 포인트가드라고 해도 너무 작다. 슛을 먼저 보는 포인트가드이며, 실책 때문에 고전할 때도 있다. 수비 매치업에서도 고전이 예상된다. 간단한 패스 대신 화려한 패스를 하려다 팀을 망칠 때도 있다.” 포지션이 포인트가드인 선수에게는 최악의 평가나 다름없었지만 그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갔습니다.

 

★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NBA 시작

 NBA에 가기로 결심한 그는 키(맨발 키 170.9cm)가 제일 작은 선수로 분류되었고, 드레프트 현장에는 아예 초대도 받지 못했습니다. 키 때문에 2011년 NBA 드래프트에서 맨 마지막 60순위로 새크라멘토 킹스에 지명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역시도 하나의 동기부여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드래프트 이후 인터뷰에서 “내 앞에 59명이 호명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날이었다.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더 좋은 스토리가 만들어지지 않았나”라고 말했습니다.

 꼴찌 순번임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소속팀 킹스의 포인트가드 사정이 얽히면서 주전으로 자리 잡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주전으로 발탁되자 기다렸다는 듯 코트를 누볐고, 주전으로 나선 첫 5경기에서 19.2득점에 6.8어시스트 3.8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2월에는 마이애미 히트를 상대로 한 쿼터 20득점이라는 놀라운 기록도 세웠습니다. 2011년 루키 중에 한 쿼터 20+득점을 올린 선수는 ‘1순위’ 카이리 어빙과 ‘60순위’ 토마스뿐이었습니다. 팀은 패배하긴 했지만 샌안토니오와의 경기에서 개인최다득점인 46점을 넣었습니다.

 13-14시즌에는 커리어하이 점수(38점)를 새로 썼고, 위저즈 전에서는 생애 첫 트리플더블(24점 11어시스트 10리바운드)도 기록했습니다. 13-14시즌 성적은 평균 20.3득점 6.3어시스트. 6피트 신장이 안 되는 선수가 20+득점 6+어시스트를 기록한 건 NBA 역사상 토마스가 5번째입니다. (캘빈 머피, 다나 바로스, 데이먼 스타더마이어, 마이클 애덤스)

 

★ 보스턴으로의 트레이드는 실수였다

 킹스는 그의 열정을 오래 품지 않았습니다. 그는 2014년에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었지만 피닉스 선즈로 싸인-앤-트레이드(계약기간 4년에 2,800만 달러) 되었습니다. 그러나 맥도너 단장은 결국 한 시즌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토마스를 보스턴 셀틱스로 트레이드 했습니다. 보스턴 입장에서는 완전 고마운 결정이었습니다. 이미 대니 에인지는 여름 무렵부터 토마스 영입을 희망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훗날 선즈의 맥도너 단장은 애리조나 지역 라디오에 출연해 그 트레이드가 실수였음을 인정했습니다. “우리가 토마스를 뽑은 건 식스맨 역할을 맡겨 득점력을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보스턴에서 뛰는 걸 보니 그가 왜 주전 자리를 그토록 원했는지 이해가 간다. 어쩌면 우리는 그가 벤치에서 더 역할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했던가, 아니면 그가 더 창조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가 했어야 했다.”

 

★ 보스턴의 돌파와 득점을 책임졌던 아톰

 14-15 시즌 보스턴 셀틱스로 트레이드 후 기존에 셀틱스에 부족했던 클러치 타임 득점을 담당하는 해결사로 활약했습니다. 21경기를 뛰며 19.0득점 5.4어시스트를 기록한 그는 그 활약에 힘입어 식스맨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습니다. (1위는 루 윌리엄스)


 15-16 시즌에는 보스턴 셀틱스에서 벤치 해결사 역할을 하다 마커스 스마트가 부상을 당하면서 주전으로 뛰었습니다. 출장 시간이 늘어났고, 팀의 공격의 해결 활로를 맡으면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였습니다. 사실상 보스턴의 에이스로 군림하며 브래드 스티븐스 감독의 지도력 아래 더욱 성장하였습니다. 3월에는 평균 25.9득점을 기록하며 ‘3월의 선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15경기 연속 20득점을 퍼부었습니다. 21세기 이후 보스턴 역사상 2번째 기록입니다. 그리고 골든스테이트와의 경기에서 4쿼터 막판 결정적인 2점으로 골든스테이트의 홈 55연승을 저지했습니다. 애틀란타 호크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3차전 홈 경기에서 42득점으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팀의 시리즈 첫 승이자 브래드 스티븐스 감독의 플레이오프 첫승을 이끌었습니다.

 16-17 시즌에는 동부 최고 수준의 포인트 가드로 거듭났습니다. 원래부터 뛰어난 4쿼터 클러치 능력이 터지다 못해 폭발해버렸습니다. 마이애미 히트와의 경기에서 커리어 하이 52득점을 기록했습니다. 더 고무적인 점은 4쿼터에만 29득점을 기록해 자신의 클러치 타임 경쟁력을 증명했습니다. 포인트가드로써 어시스트를 1개도 기록하지 않고 득점 1옵션으로만 활약했다는 점에서 자신의 득점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정규시즌 막바지까지 좋은 활약을 펼쳤고, 보스턴은 클리블랜드의 자멸도 있었지만 53승 29패로 07-08 시즌 이후 처음으로 정규시즌을 동부 1위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플레이오프 하루 전 토마스는 여동생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적인 일을 겪었습니다. 정신적으로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음에도 시카고 불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1차전 홈 경기에 출전을 감행, 33득점 6어시스트 5리바운드를 기록. 팀은 패배. 2차전 경기에서는 20득점 2어시스트 4리바운드를 기록 팀은 완패. 3,4차전에서 멋진 활약으로 시리즈 전적을 원점. 이후 5,6차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팀도 2연패 후 4연승으로 2라운드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플레이오프 2라운드 위저즈와의 1차전 홈경기 33득점 9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승리. 2차전 홈경기에서 53득점 4리바운드 4어시스트로 플레이오프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팀 2연승. 존 월과 불꽃튀는 접전을을 벌였으나 4쿼터&연장전에서 29점을 몰아넣는 클러치의 화신 다운 활약으로 이번 대결에서 승리했습니다.

 결국 보스턴은 7차전까지 가는 혈전끝에 마지막 경기에서 켈리 올리닉이 폭발하며 4:3 승리로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습니다. 이제 정규시즌 순위는 보스턴보다 한계단 아래지만 사실상 동부의 끝판왕으로 여겨지는 르브론 제임스가 버티고 있는 디펜딩 챔피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1,2라운드에서 6차전, 7차전까지 가는 혈전을 펼쳤기 때문에 체력이 방전되었고, 반대로 클리블랜드는 1,2라운드를 스윕으로 마쳐서 체력이 넘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과는 1차전, 2차전 두 경기 모두 대패했습니다. 심지어 토마스는 2차전 전반전에 당한 엉덩이 부상으로 후반전 전체를 나오지 못하는 악재까지 겹쳤고 결국 시즌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팀은 1승 4패로 패배하며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 카이리 어빙과 트레이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이적

 이적을 요청한 카이리 어빙을 영입하기 위해 토마스와 제이 크라우더, 안테 지지치, 그리고 브루클린 네츠으로부터 얻은 2018년 비보호 1라운드 드래프트 픽을 받는 조건으로 1:4 트레이드가 확정되며 보스턴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다만 지난 시즌 입은 부상의 예후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 수술이 불가피하다며 계약 자체가 파토날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보스턴이 2020년 2라운드 픽을 얹어 주는 조건으로 최종합의를 마쳤습니다. 이미 커다란 부상을 당한 채 이적해 왔기 때문에 2017년 안에는 볼 수 없습니다. 일단 그는 2018년 1월 복귀를 노리고 있습니다.

 

★ 아이재아 토마스의 장점과 단점

① 리딩보다 공격에 치중하는 공격형 포인트 가드.

▷빠른 스피드, 돌파 스킬, 슈팅 스킬, 3점 슛 모든 부분 리그 최정상.

▷장신 숲을 뚫고 레이업을 성공시킬수 있는 뛰어난 돌파능력.

▷크로스오버를 하면서 드리블하는 시간이 매우 짧고 드리블이 매우 간결함.

▷상대 선수에게 스틸을 당하거나 볼을 흘리는 경우가 없을 정도의 완벽한 콘트롤.

② 가공할만한 공격 효율성.

▷팀의 세 번 공격 마다 한번이 토마스의 슛, 패스, 파울유도, 또는 실책으로 끝난다.

▷엄청난 판단력으로 좋은 슈팅과 좋은 패스 밖에 안하는 엄청나게 지능적인 선수.

▷시즌동안 34% 이상의 사용률과 60% 이상의 TS%를 기록한 선수는 NBA 역사상 단 세명, 마이클 조던, 제임스 하든, 그리고 토마스 뿐.

③ 리그 최정상급 패싱 능력

▷NBA 스킬 챌린지에서 유일하게 모든 라운드에서 패스를 공중에 있는 링 안에 넣는 데 한번 밖에 걸리지 않는 최고의 패서.

▷패스의 속도뿐만 아니라 패스의 정확도는 리그 최정상급.

④ 현저하게 떨어지는 수비력

▷수비는 포인트 가드들 중 거의 꼴찌 수준.

▷자신의 마크맨에게 블락을 할 수 없고 손을 뻗어서 슈팅 방해를 하기 힘듬.


중요한 건 자신감이라고 말하는 아톰

 NBA 선수들의 평균 경력은 4.8년이다. 제이슨 키드 감독(밀워키 벅스)은 “5년 이상 이 리그에서 살아남았다면 존중해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슈퍼스타들이 아닌 이상, 확실한 장점을 어필해야만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체 1순위 출신 앤써니 베넷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렇기에 60번째로 지명된 선수가 핵심이 된 것은 그야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NBA 선수 450명 중에서도 키가 가장 작은 선수. 그러나 그는 ‘거인들의 리그’에서 스타가 됐습니다. 상대가 막기 가장 까다로운 선수가 되었습니다. 작은 신장에도 불구, 20점씩을 뽑아낼 수 있는 활약의 원천에는 자신감이 있고, 그 자신감의 밑바탕에는 한계 극복을 위한 열정과 긍정적인 성격, 그리고 엄청난 반복 훈련이라고 말합니다.

 대학시절부터 거르지 않은 긴 훈련의 성과물. 비시즌에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몸을 만드는데 주력해왔습니다. ‘키 작은 선수는 안 돼’라는 말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NBA에서 가장 키가 작은 선수, 하지만 꿈은 누구 못지 않게 컸던 선수. 그의 질주가 어디까지인지 어디까지 이루어 낼 수 있을지 지켜보며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