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 프로 농구를 지배한 집념과 투혼의 사나이 “농구9단 허재 선수”

Posted by 사&슬 파파
2021. 6. 2. 08:31 농구 이야기/한국 농구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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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년 드디어 프로농구가 개막되고, 용병들이 등장하면서 국내 스타들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기아 팀은 여전히 최강팀으로 군림하지만, 그는 프로화 이후 상당히 부진한 모습을 보이게 되고 팀의 넘버원자리마저 후배 강동희에게 내주고, 팀 내에서 그는 더 이상 예전같은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96-97시즌 기아의 감독인 최인선의 입장에서 봤을 때 가드로서 패스를 해줄 선수로는 강동희가 있었고, 주요 득점원으로는 김영만이 있었고, 인사이드 득점원으로는 클리프 리드를 비롯한 외국인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즉 실업 시절처럼 그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비중이 줄어드는 데 반발했지만, 최인선은 프로농구 원년 챔피언결정전 최종전에서 그를 전혀 기용하지 않고도 팀을 승리로 이끌어 내며 그가 팀 내에서 필요하지 않는 존재임을 증명해냈고, 최종 결정전에서 관중들은 그를 연호했으나 그는 단 1초도 코트 위에 서지못했습니다. 그와 반대로 강동희 선수는 그해 정규시즌과 챔피언결정전에서 최우수선수가 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습니다.

 

◆ 유일무이 준우승팀에서 MVP 수상하다

 97-98 시즌, 그는 팀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그 이전에 자신의 힘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끈 후 명예롭게 떠나려 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챔피언결정전 상대인 이상민과 조니 맥도웰이 버틴 현대는 사람들이 드디어 기아의 시대가 끝난다고 생각할 정도로 엄청나게 강했고, 기아는 외국인 선수 저스틴 피닉스의 태업으로 인해 인사이드에서 절대 열세에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거기다 그는 플레이오프에서 오른손 손등이 부러지는 부상까지 당했습니다. 기아의 승리를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이 이상 최악의 상황은 없었다고 말할 정도의 결승전에서, 그는 자신이 왜 농구 대통령인지를 실력으로 증명했습니다. 인사이드에서 절대 우세에 있는 현대가 허재 단 한 사람에게 휘둘리며 패배를 거듭했고, 오른손에 깁스를 하고 눈덩이가 찢어져도 코트에서 달리고 득점하는 그를 보고 그에 대해 비판하던 사람들조차 말을 잃을 정도였고, 기아의 팬들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7차전에 이르면서 그가 가진 모든 걸 쏟아내었지만 그에게도 결국 한계가 왔고, 결국 그는 팀을 우승시키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챔피언결정전 MVP는 우승팀의 선수가 아니라 허재였습니다. KBL에서 챔피언 결정전 MVP가 준우승팀 선수 중에서 나온 일은 이 대회가 유일할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과 환희를 선사해 준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그는 한국 나이 34살, 전성기가 지나 은퇴를 해도 이상할 것이 없던 나이에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떤 신문 기사에서는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선 '마치 상처입은 사자가, 다른 맹수에 포위당한 채 공격을 당하면서도 결연하게 싸워나가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라고 썼을 정도입니다.

 

97-98 챔피언 결정전에서 그의 기록들

☞ 1차전 : 29득점 5리바운드 6어시스트 5스틸

☞ 2차전 : 30득점 2리바운드 11어시스트 5스틸

☞ 3차전 : 21득점 3리바운드 5어시스트

☞ 4차전 : 27득점 3리바운드 1어시스트 5스틸

☞ 5차전 : 17득점 8리바운드 3어시스트 2스틸

☞ 6차전 : 22득점 3리바운드 6어시스트 4스틸

☞ 7차전 : 15득점 6리바운드 13어시스트 4스틸

 

◆ 농구대통령 허재 스스로의 힘으로 우승을 이뤄내다

 97-98 시즌 끝난 후 그는 트레이드를 요구하였고, 나래 블루버드 소속이었던 정인교 선수와 맞트레이드되어 팀을 옮겼고, 옮긴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면서 활약을 펼쳤습니다. 누가 막아도 상대가 어느 팀이라도 허재 단 한 명의 힘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지만, 이미 그는 시즌 내내 그런 활약을 펼칠 수 없는 나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팀 사정이 좋지 않아 패배가 점점 쌓여가면서도 그는 자신의 힘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겠다며 코트 위에서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버텨 나갔고, KBL 프로농구 코트 위에서 최고의 노장이 되어가면서도 철저한 자기 관리 속에 맹활약을 하고 자신이 부족해진 걸 인정하며 팀의 요구에 그는 자신을 최대한 맞추어 갔습니다.

 02-03 시즌 팀의 어려운 상황 속에 마침내 신인 드래프트에서 중앙대 특급 센터였던 김주성이 입단하였습니다.  그의 입단을 누구보다 그는 열렬히 환호했고 원했습니다. 김주성의 입단과 3점슛 능력이 뛰어난 데이비드 잭슨이 팀에 합류했고, 그는 신인이기에 공격 기술이 부족한 김주성에게 포인트가드로서 최고의 패스를 공급하고 데이비드 잭슨을 어르고 달래며 팀을 승리로 이끌어갔습니다.

 그는 플레이오프에서도 고감도 패싱능력과 공수 조절을 통해 한경기 한경기 팀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힘으로 팀을 KBL 프로농구 최종 결승에 팀을 올려놓았습니다. 결승전 상대는 어시트스 왕 김승현과 전천후 득점기계 마르커스 힉스가 있는 전 시즌의 우승팀 대구 동양 오리온스였습니다.  그는 오리온스를 상대로 코트 위에서 갈비뼈가 부러져가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투혼을 불살랐고, 결국엔 그토록 원하던 팀을 KBL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당시 마지막 경기 1쿼터를 24:3으로 뒤지며 말도 안 되게 몰리자 갈비뼈 골절에 등에 구멍을 뚫고 진통제를 맞은 상태로 벤치에 있던 허재가 나가겠다며 트레이닝복 상의를 벗자 전창진 감독이 조금만 참으라고 말렸습니다. 이런 그의 투혼이 같은 편 선수에게 옮긴 것인지 모르겠지만 신기하게 식스맨 신종석의 외곽슛이 터지며 전반을 동점으로 마쳤고, 결국 우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 농구 9단 허재, 코트여 안녕

 03-04 시즌이 끝난 후 한 시대를 풍미한 농구 대통령 허재는 현역에서 은퇴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프로 이후 15점에 달하던 평균 득점이 8점대로 떨어지는 등 체력적 노쇠는 명백했기에 은퇴는 어느정도 예정된 것이었습니다. 팀도 은퇴식까지 크게 치뤄주었고, 프로에선 세 번째로 그의 등번호인 9번을 영구결번으로 해주었고, 각 종 농구 행사로 그에 대한 존경을 담는 등 축복을 받은 명예로운 은퇴였습니다.

 그가 비록 농구장에서 은퇴했지만 그의 플레이는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것입니다. 허재 선수의 플레이를 볼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거에 감사드리고 멋지고 감동적인 플레이로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농구 천재 허재의 프로 농구 기록

 

★ 농구천재 허재의 프로 통산 성적 및 각종 수상 경력 

☞ 프로농구 통산 8시즌 동안 4,524득점 1,148리바운드 1,572어시스트 508스틸.

☞ 97~98 챔피언 결정전 MVP

☞ 99~00 프로농구 베스트 5

☞ 02~03 모범선수상

☞ 02~03 훼르자 프로농구대상 MVP

☞ 02~03 LG 플래트론 프로농구대상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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