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콘 (Ready Mixed Concrete)의 이해
[1] 레미콘의 개념과 이해
1.레미콘 (Ready Mixed Concrete)의 정의
레미콘(REMICON)이란 Ready Mixed Concrete의 약자로써 시멘트, 골재, 혼화재의 재료를 이용, KSF 4009에 규정된 제조방법, 품질검사 등에 준하여 전문적인 콘크리트 생산공장에서 제조한 후 트럭믹서(Truck Mixer) 또는 에지테이터트럭(Agitator Truck)을 이용하여 공사현장까지 운반되는 아직 굳지 않은 콘크리트를 의미한다.
2. 레미콘의 분류
1) 레미콘제조업은 한국표준산업분류상 제조업중 비금속광물제조업에 속하며, 소분류로는 시멘트제품의 레미콘제조업에 해당한다.
2) 레미콘은 각 제품별로 조골재 최대치수, 호칭강도, 슬럼프 등에 따라 100여개 이상의 이상의 많은 규격이 있다.
(예 : 25(조골재 최대 치수) - 210(강도) - 12(슬럼프))
3) 조골재 최대치수란 사용하는 조골재중 가장 큰 조골재의 지름이 지정된 규격을 넘지 않는 것으로 19mm, 25mm, 40mm 등으로 대별되며, 25mm이하 규격은 철근콘크리트에, 40mm 이상은 주로 無筋콘크리트에 사용된다.
4) 호칭강도는 타설 28일의 압축강도를 기준으로 하여 100kg f/㎠ 부터 300kg f/㎠ 이상의 고강도콘크리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존재하며, 슬럼프는 콘크리트의 반죽질기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수치가 높을수록 유동성이 많은 부드러운 콘크리트를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5cm부터 21cm까지 사용된다.
3.레미콘 산업의 특성
1) 제품상의 특성
① 한시적 제품
: 레미콘은 레미콘공장의 배쳐플랜트에서 제조된 후 1시간 이상이 경과하게 되면 유동성이 급격히 저하된다. 따라서 레미콘은 제조후 60분내(최대 90분내)에 공사현장에 운반, 타설을 완료시키는 것이 필요하며, 90분내에 타설치 못한 제품은 적절한 조치가 강구되지 않는 한 폐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② 반제품
: 레미콘은 그 자체로서 완제품이 아니고 건설공사현장에서 시공된 후 경화되어 콘크리트구조물을 형성하게 되므로 반제품(semimanufactured goods)의 성격을 갖는다.
즉, 레미콘은 굳지 않는 상태로 공사현장에 타설됨으로 보통 28일이 경과되어 굳어진 후 제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므로 제품을 사용한 후 품질에 관한 문제야기의 소지가 높은 특성을 가진다.
③ 무재고 제품
: 레미콘은 생산후 90분이 지나면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상실되므로 재고가 존재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진다. 따라서 건설회사에서는 다른 자재는 미리 대량을 구매하여 건설현장에 보관한 후 필요시 사용할 수가 있으나, 레미콘은 재고가 불가능하므로 필요시에 레미콘 공장에 사용일자 및 시간, 수량 등을 지정하여 주문하게 되며, 레미콘회사는 건설회사가 요구한 일자 및 시간에 맞추어 건설현장에 레미콘을 제조, 공급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④ 다품종 제품
: 레미콘은 조골재(자갈)의 최대치수, 압축강도, 슬럼프 등의 조합에 따라 100여개 이상의 생산규격이 존재하고 있는 다품종 제품이며, 자갈의 종류에 따라 25mm는 주택용, 40mm는 바닥·포장용, 19mm는 도로·대교용에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현재 25mm 규격이 80%이상 차지하고 있으며, 호칭강도는 210kgf/㎠, 슬럼프는 12cm가 일반화되고 있다.
2) 레미콘 산업상의 특성
① 지역형 산업
: 레미콘은 제품생산후 레미콘 트럭은 90분, 덤프 트럭은 60분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까지가 영업권으로 국한된다.
레미콘제품이 한시적이라는 특성으로 인하여 일반적으로 제품생산후 90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가 본 제품의 시장권역을 형성하므로 지역형 산업의 특성을 강하게 가진다.
② 계절성 산업
: 레미콘은 수요처인 건설산업의 동향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건설활동이 활발한 봄과 가을에는 수요가 급증하고 겨울철과 장마철에는 수요가 급락하여 성수기와 비수기가 확연히 구분되는 계절적 특성을 지닌다. 보통 비수기는 1∼2월, 7∼8월 장마기간이며, 그 외 기간은 성수기로 볼 수 있는데, 특히 4∼6월, 추석전 20일이 최고 성수기를 이룬다.
③ 주문형 산업
: 한시적, 무재고의 제품 특성으로 인하여 주문에 의하여 생산. 공급하는 주문형 산업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므로 일반 제조업에 비하여 가동률이 저조한 편이며, 수요에 대하여 공급이 비탄력성 산업이다.
④ 도시형 산업
: 건설공사의 발주가 대부분 인구가 집중된 도심에서 발생하므로 한시적 제품 특성상 도시권에서 생산되어야 하는 도시집중형 산업이다.
⑤ 물적 유통이 중요한 산업
: 레미콘 제품은 시멘트, 자갈, 모래 등의 원재료를 공장으로 운송, 제조공정을 거친 후 레미콘트럭으로 제한시간내 건설현장에 운송하므로 제조업과 운송업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통상 원가내 운송비용이 10∼15%를 차지하므로 R/T의 수송능력의 효율적인 관리가 매우 중요하며 성수기에 운송능력의 한계로 적기공급의 문제가 상시 제기된다. 또한 원자재를 가공하여 제품을 생산하므로 원자재의 원활한 조달여부가 산업안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1990∼1992년 사이에 시멘트 파동으로 인한 레미콘공급 부족현상의 심화가 야기되었거나 현재 강모래, 강자갈의 고갈로 인한 골재 부족이 심화됨에 따라 레미콘공급부족 뿐만 아니라 품질에도 문제시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어, 원자재 수급여건은 레미콘 공급여건과 함께 향후 성장방향을 좌우할 것이다.
[2] 레미콘의 발생과 역사
1. 레미콘의 역사
독일의 Harald Steibichler 박사(Ready mixed concrete in Germany/Mordern Concrete 1974.3)에 의하면, 세계에서 최초로 레미콘이 탄생한 것은 1903년 독일 의 스타른베르크(starnberg)에서 건설업자 마겐스(J. H. Magens)에 의해 레미콘 플랜트가 건설되어, 레미콘 제조의 특허를 받은 때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약 50년간 레미콘 기업은 성장하지를 못하였다. 그 이유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제 1차 세계대전과 그 후의 세계적인 경제불황, 그리고 미숙한 기술 때문에 기업으로 성립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독일에서의 레미콘 기업의 부활은 제2차 세계대전종료 후의 1954년이었다.
한편, 미국에서는 독일보다 늦은 1913년, 메릴랜드주의 볼티모어시에 최초의 레미콘 플랜트가 건설되었다. 당초에는 샌트럴믹스(central mix) 방식으로, 플랜트에서 반죽되어, 덤프트럭으로 운반되었기 때문에 품질불량으로 평판이 나빴고, 10년간은 거의 사용자로부터 인식되지 못하였다. 그 후 1926년에 이르러 트럭믹서의 발명으로 품질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급속한 발전을 보기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창업 당시부터 골재업자가 골재판매의 일환으로 소규모 기업의 형태로 시작된 것이 많으며, 공급지역이 광대하였기 때문에 거의가 트럭믹서 방식이 채택되었다. 그 후 대기업의 참여에 의해 대도시에서는 센트럴믹스 방식도 나타나게 되었다. 1950년에는 전미 1,320개 도시에 1,700개의 플랜트가 건설되었으며, 년간 생산량은 3,800만 입방미터에 달하게 되었다.
한편 일본에서 최초의 레미콘 공장이 설립됐던 것은 1949년(昭和 24년) 11월로서, 당시 磐城시멘트(주) [현 住友시멘트(주)]에 의해 레미콘 기업으로서 東京콘크리트공업(주)가 설립되어. 동경의 業平橋 (현 黑田區押上1-1-77)에 레미콘 매매를 목적으로 하는 제 1호 공장이 건설되었다. 이 공장은 일본건설(주)사 제품의 16절의 페이스트믹서(제품명[워터클리터]) 1기와 16절 및 14절의 트럭믹서를 가진 日産 150㎥정도였는데, 당시는 자갈, 시멘트의 수송은 철도에 의존했다.
창업 당시의 레미콘의 운반은 트럭믹서가 없었으므로 운반에는 덤프트럭을 사용하였으며, 운반 도중의 콘크리트 재료분리가 큰 애로사항이었다. 그 때문에 슬럼프 5cm 이하의 포장용이 주를 이루었고 건축용은 거의 없었다. 건축용으로 처음 출하된 것은 銀座의 동경온천의 건물(昭和 26년)이다.
된비빔 콘크리트를 덤프트럭으로 현장에 운반하고, 그 곳에서 다시 한번 새로 반죽하던가 현장에서 믹서를 설치하고 물을 첨가해서 다시 반죽하는 등의 처리를 해야 했다. 이러한 다시 반죽한다는 번거로움 때문에 레미콘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였고, 단순히 중량계량을 하고 있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 후 AE콘크리트가 도입되어 콘크리트의 재료분리 방지에 도움을 주었으며, 덤프트럭에 교반용 에지테이터를 장착하거나, 나아가 수평형 드럼 에지테이터가 채용되는 등의 운반차의 개선에 의해 품질문제가 해결되어 수요자의 납득을 얻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일본의 레미콘 기업은 시멘트회사의 시멘트판매수단으로 기획되어 시멘트 유통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고, 1953년 이후 6대도시를 중심으로 시멘트 메이커에서는 더욱 레미콘 회사의 건립에 노력하여 품질관리와 기술지도를 직접 행하는 것에 의해 레미콘이 점차 지방중소도시로 보급되어 갔다.
2. 레미콘 업계의 역사
미국의 레미콘 업계의 발전은 현저하여, 1960년에는 4,000개의 공장에 달하였고, 국내 시멘트소비량의 소비량의 약 60%를 레미콘이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도시의 일부의 공장을 제외하면, 전공장의 약 75%가 트럭믹서를 이용하여 공장에 고정믹서를 설치하지 않는 소규모공장이 많았으며, 1970년에는 공장수 약 10,000개, 레미콘 년 생산량은 1억 7천만㎥, 레미콘 전화율은 64%에 달하였지만, 그 후에는 증가됨이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유럽의 레미콘 사정은 공장수 및 생산량 면에서는 이탈리아, 서독, 프랑스, 영국의 4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생산량은 나라의 GNP에 좌우되므로 인구 1인당의 레미콘 사용량으로 보면, 위의 4개 나라 이외에 오스트레일리아, 그리스, 스위스 등에서도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레미콘은 도시부의 공장을 제외하면, 대개 골재생산지에 직결 혹은 인접 건설된 것이 많고, 설비도 비교적 간단하며, 계량기도 일반적으로 단순하여 표면수 보정장치 등 복잡한 기구를 도입한 것은 적은 편이다. 그러나 대도시에서는 1뱃치의 용량이 6-12㎥의 가경식 믹서를 가지고 모든 공정을 컴퓨터를 통하여 관리하는 공장도 드물게는 존재하고 있다.
미국의 특색으로는 모빌믹서가 있다. 시멘트, 골재탱크, 계량장치, 믹서 등을 모아서 트레일러와 트럭샷시 위에 탑재한 것으로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광대한 토지와 도로사정이 좋은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유럽 주요 4개 국가는 각각 특색을 달리하고 있다. 영국, 이탈리아는 트럭믹싱, 서독, 프랑스는 센트럴 믹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구미에 비해서 후발국인 일본은 오늘날에는 공장수, 생산량에서 미국 다음으로 제2의 지위를 확보하고, 인구 1인당 레미콘 사용량에서는 1.34㎥로 미국을 크게 앞지르기에 이르렀다. 昭和 30년대 후반부터 40년대의 고도 성장기는 물론, 제 1차 오일쇼크 후의 불황하에서도 공장은 계속적으로 건설되었고, 오늘날 공장수가 약 5,300개에 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레미콘 기업은 일반적으로 기업규모가 작고, 자본금 1억 이하의 회사가 95% 이상을 차지하고, 한 회사당 평균 1.1공장이라는 전형적인 중소기업이다. 그 때문에, 과당 경쟁적 체질을 항상 내포하여, 경영상에서 보면 [가격경쟁→적자경영→시멘트메이커의 구제] 라고 하는 패턴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많은 수의 공장이 골재생산지에서 비교적 거리가 멀기 때문에, 3-5일분의 골재 저장설비를 가지고 있으며, 반대로 시멘트는 하루분 정도의 탱크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믹서는 강제교반형과 가경식이 주로 사용되고 있고, 최근에는 강제교반식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계량설비의 대부분은 전자동 개별계량의 펀치카드방식으로 특히 최근에는 공장의 자동화가 보급되어, 모니터TV 등에 의한 원격집중조작을 실시하고 있는 공장이 증가하고 있다. 또, 컴퓨터에 의한 배차, 전표처리, 계약, 지불 등의 관리, 디지탈계량에서 공장조작까지의 프로세스콘트롤 등의 채용도 증가하여 왔다.
일본의 레미콘업계의 설비수준은 해외에 비해 특히 높아, 재료의 다양화에 의한 저장설비의 증가, 납입서비스를 위한 설비의 대형화, 성력화, 자동화의 보급, 그 외 공해방지설비의 충실 등 현저한 발전을 보이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3.국내레미콘 업계의 성장과정
1) 1965년 ∼ 1970년 중반
: 1965년 7월에 쌍용양회공업 (주) 서빙고공장 (당시 대한양회)을 시작으로 국내 레미콘산업의 도입기가 시작되었으며, 1976년까지 전국에 7개공장을 신설하면서 레미콘산업을 독점하였다.
2) 1970년 중반 ∼ 1980년
: 1970년대 중반이후 완전 내수형 업종인 레미콘산업은 레미콘제품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향상과 더불어 그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후기에 들어서는 시멘트, 골재, 건설업계에서 원자재의 자가소비수단 및 판로확대를 목적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여 성장기에 진입하게 되었다.
3) 1980년 ∼ 1990년
: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국내 건설경기의 활성화에 힘입어 주로 시멘트 2차가공업체를 비롯한 중소업체의 참여가 지방 중 소도시를 중심으로 본격화되기 시작하였으며, 1980년대 후반이후 올림픽 관련공사, 정부의 주택 200만호 건설 등으로 건축경기가 상승됨에 따라 레미콘산업은 고도의 성장을 이룩하게 되었다.
4) 1990년 ∼ 1997년
: 1990년대 이후 5개지역 신도시건설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주택건설, 정부의 사회간접자본의 확대로 1990년대 초반에는 레미콘파동이라는 기현상까지 나타났으나, 정부의 건설경기 억제책으로 다소 안정적인 성장을 계속하였다. 한편 1990년대 들어서는 중소업체의 난립으로 인한 공급능력의 증가로 가동율 저하, 과당경쟁의 가속화 등으로 부도업체가 속출되었으며, 향후 실질경제성장율 이하의 소폭 수요 증가예상으로 레미콘산업의 기술개발, 품질 및 생산성 향상, 원가절감 등 경영합리화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5) 1997년 ∼ 현재
: 1997년말 IMF 위기로 인한 급격한 경기 침체로 건설투자 감소 및 대형 건설사들의 연쇄부도로 수주물량의 감소에 따른 레미콘 수요의 급감으로 레미콘산업 전반에 걸쳐 침체가 가중되었다. 2001년말부터 국내 경기회복에 따라 나아지는 양상을 띠고는 있으나 자재의 수급불균형 및 난개발에 따른 건축심의의 강화로 향후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육성발전을 위한 전환점으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2024.05.17 - [건축시공기술사 Sub Note] - 건축시공기술사 서브노트 : 콘크리트 프레이싱 붐(Con'c placing Boom)